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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과 하강/슈프림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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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가는 것은 힘이 든다. 왜 올라가는지 모르고 올라가면 더 힘들다.

그런데 가다가 내려가보면 왜 올라가는지 알 수도 있다. 올라가다 보면 더 높은 산이 보인다. 이제 오백미터 왔는데 팔천미터 가야한다. 아득하다. 구름때문에 간다. 내려가보면 힘들어도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먹어보면 그보다 못한 것을 먹었을 때 위계를 분류할 수가 있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산에 올라가면 죽을때까지 못 올라가도 대강 정상이 보일락 말락하는 풍경이라도 볼 수 있다.

꿈에 나는 스위스의 루체른역사에 있었다. 그 역은 아주 작은 간이역이었고 사람도 없었다. 게시판이 하나 붙어 있고 나무의자 하나 있었다. 갑자기 예수님이 엄청나게 큰 돈후한 얼굴로 간이역 전체를 덮을 정도의 크기로 얼굴만

등장하였다. 내가 살면서 본 그림속 예수님은 다 아름다운 미남자였는데

이 꿈에 나온 예수님은

무시무시한 엄위와 공포스러울 정도의 압도적인 권위를 지닌

거대한 보라색 얼굴의 예수님이었다.

입술이 너무너무 두껍고 크고 얼굴 전체에 입술이 가장 강조된

예수님의 머리가 조그만 간이역 게시판위에 두둥 떠 올랐고

게시판에는 한 가득 글씨가 써지면서

내가 살아오며 겪은 모든 일들의 원인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등등이 쭉 떴다. 그런데 일단 기억이 안난다.

그걸 본후 간이역의 나는 아….하고

모든 일이 다 이해되었다.

이것은 분명 예수님의 이미지이지 예수님자신은 아닐 것이다. 나는 본 적이 없으니까.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최상의 미남자라고 했다. 보니까 미남자의 기준도 제각각이어서 자기들 기준의 미남으로

나타나시는 듯 했다.

여튼 나는 예수님을 본 적이 없고 그러나 꿈속의 그 분은

돈후,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무섭고 엄위로우신 분.

시퍼런 보라색. 너무나 보라색이다 못해 금색이 돌정도로 청동색이 도는

무시무시한 예수님의 얼굴이었다.

도저히 잊혀지지 않아서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두었는데

아무래도 그 얼굴을 재현할 수 없다. 그것은 유화에 템페라 에그쉘광을 넣어야 될까 말까이다.

여튼 그 뒤 오년후에 나는 내가 봤던 예수님과 근사한 그림을

발견하였다. 박생광이라는 화가의 그림속 부처하고 너무나 닮으신 것이었다.

그 꿈을 꾼지 근 8년째인데 여전히

게시판속의 말이 기억이 안나고 (아 그것만 알면 내 인생은 게임끝인데)

그 얼굴은 그릴 수가 없고

박생광의 그림은 국립박물관에 있거나 아원미술관인가…에 있고

그러하다.

여튼 그 스위스 루체른 체르마트 역사에 등장하신 예수님은

상상할 수 없는 높이의 산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등산 좋아하냐? 라고 젠틀하게 물으셨을리는 없고

도대체 그렇게 두껍고 무시무시한 입술의 정체는 무엇인가

등산에 대한 글을 읽으니 또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