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A Career in Books

  • by

케이트 개비노 지음/펭귄 Plume 8월 출간/윌북출간 예정

뉴욕대나와서 연봉 3천이면 부모님이 혀를 끌끌 찰 것이다. 얼마전 계약한 이 책에 나오는 여자 편집자 3명은 알만한 명문대를 나와서 대학출판부/대형 출판사/인디출판사(각종 지원금으로 돌아간다는…) 에 엄청난 경쟁을 뚫고 취직을 한다. 이 분들이 받는 연봉이 그러하다. 월세만 얼마인 동네에서 오…하지만 드디어 역사학학위를 쓸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낮은 연봉같은 건 딱히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그런 행복한 사건일 것이다. 막상 취직을 해보니 뭐 당연히 그렇듯이

현실과 이상은 사이가 몹시 안 좋고, 월세(우동집 이층에 네온싸인 번쩍이는 원룸에 사는 세명)내고 면접보려고 갔던 미용실 비용대기도 허덕일 정도로 박봉이다. 문화사업 및 인디정신으로, 지원금으로 돌아가는 인디 출판사는 그 나름대로 별로 안 정의로운 면이 이제 드러난다(안희정스러운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싶다). 한편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책들을 밀어본다…막내 편집자로써 택도 없는 얘기다. 대형출판사의 매출을 올리려면 “팔리는 책”을 밀어야 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동네에 점잖게 보이는 할머니 90세가 그 옛날 부커상 수상후보에 오르신 소설가셨다고 한다. 우연히 가본 그녀의 아파트는 온벽이 책이다. 옷!!!!!!

할머니의 소설을 읽어본 그들은 아 이거다!! 라고 무릎을 친다. 진짜 재미있네-그런데 절판된 소설을 어떻게 무슨 근거로 다시 내자고 하지? 이 책은 이 말도 안되는 테스크를 하는 초보여자 편집자 셋의 이야기이다.

나-한국출판사-미국출판사 담당자 모두가 “완전 내 얘기네”이러면서 인종 국적을 초월한 공감으로 바로 계약한 그러한 프로젝트이다. 한편으로 그 책에 나오는 할머니 부커상 수상자 베로니카 보, 의 서가를 만화책으로 보면서

엊그제 집안대청소를 한다고 버려주는 업체를 불러서 5시간동안 버리고 청소를 하면서 내가 무려 두달간

저걸 어째야 좋을까에 대해서 손놓고 있던 여러 부분이 4시간만에 싹 치워지는 것을 보면서

  1. 전문가를 써야 한다
  2. 나에게는 저런 청소 능력이 왜 없을까—–라는 열등감이 들었지만 저녁에 귀여우신 엘신부님이 이메일로 뭔가 칭찬을 해주셔 그래 내가 청소는 잘 못하지만 잘하는 거 하나는 있다…
  3. 나의 집은 나의 뇌속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한 동 전체는 여러 뇌들의 집합체. 우리집에도 저런 알고보면 부커상 3개는 타고도 남을 대학자나 왕년의 소설가나 등등 대단한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내가 맨날 재활용도 잘 분류안하고 버리고 개끌고 다녀서 화단을 망치고 기타 등등 이들 대단한 노인들의 일상을 불편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알고보면 우리는 얼마든지 친해질 수 있었는데도……..

왜 이런 생각으로 비약을 했는가하면

우리 아파트에는 노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나같은 사십대는 엘베 버튼이나 눌러줘야 할 정도다. 그런데 이 만화책을 보면서 세대 갈등이라는 건 어쩌면 가끔씩 자기 사는 집을 보여주거나 초대하거나 그런 일들로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개끌고 산책가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어머 얘 양치기개죠?” 이러면서 아는 척을 하길래 네 그렇죠(양근처에도 안 가본 경기용인강아지 농장출생이긴 하지만), 라고 했더니

“제가 영국에서 유학을 잠시 했는데 개가 양치는 거 못 보셨죠? 얼마나 용맹한지 정말 절벽을 막 뛰어다니면서 큰 양들을 다 데리고 다닌다니까요 호호호호호” 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1분 정도 했다.

그 아줌마의 집에 가면 아마도 온 벽이 책이겠지. 얼마전 만난 아주머니 2의 집에도 방 네개가 다 책이었다. 음식물쓰레기나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하면 나를 붙들고 꼬장꼬장하게 한 소리 제대로 하게 생기신 분인데

자기가 젊었을때 교수하랴 애 셋 기르랴 집안살림 다 하랴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큰 애가 가슴에 혹같은걸 달고 태어났다고 한다. 지금은 다 나아져서 멀쩡하게 회사생활하고 있지만. 남의 집 서가를 보고 나랑 같은 책이 그렇게 많다는 걸 알면

어지간한 인간적인 단점은 넘어가질 수도 있고 즉각적인 친밀감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분의 남편분은 한국학연구소 초창기에 그 옆 사택에서 사시던 그냥 봐도 공부를 위해서 태어나신 분이신데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숙연함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왜? 글쎄. 정약용에 평생을 바치신 분라서 그런가.

결국

인간이라는 방에는 얼마나 많은 책들이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이 뉴욕출판계의 초보 에디터들을 갖은 책략과 머리를 써서 그 잊혀진 거장 할머니 소설을 복간시키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별 돈도 안되는 프로젝트에 매진한다.

얼마전 어떤 대편집자가 초보 번역가에게 보낸 메일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세상에 쉬운게 어딨겠냐”. 그 말을 보는 순간 그 분의 깊은 빡침이 온몸으로 와닿는 동시에

스타인벡의 소설에 나오는 팀쉘timshel, 이라는 단어가 쫙 떠올랐는데

그러니까 인간의 선의 의지는 신의 명령이냐(마땅히 해야 하냐), 아니면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있다(인간의 의지문제냐) 팀쉘의 의미가 뭐냐고

노학자 셋이 앉아서 주야장창 토론하는 내용이었다. 이 만화책은 이십대 팀쉘의 후예들의 이야기이다.

아무도 알아 차리지도 못하고 딱히 돈도 안되고 이게 제대로 번역되냐 마냐,출간되냐 마냐 아무도 상관없는데 당자(와 당자와 이 글을 논하고 있는 한 두명??)는 이게 문제라는 것을 안다. 당자의 머릿속에서는 이 문제가 아주 중요하다. 왠지 지구상 어딘가에 이 책의 복간을 기다리고 있는 생명체들이 내가 정신차리고 이 책의 복간을 성사시키는지를 팔짱끼고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지 돈써가며 이런 일을 하게 된다.

세상의 많은 지식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별 돈도 안되는 이런 팀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늙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의 결과인지도 모른다.